우리집안 친일파예요, 가족사 확인하고 마음 정리하는 방법

처음 알게 됐을 때 당황스러운 마음부터 다루기
얼마 전 지인이 조심스럽게 “우리집안 친일파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농담처럼 꺼낸 말이 아니어서 잠깐 분위기가 조용해졌고, 본인도 어디까지 확인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죄책감, 부끄러움, 분노가 한꺼번에 얽히는 일에 가깝습니다.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이 있어요. 조상의 행적이 곧 지금의 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는 현재의 나에게 남는 문제예요.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지만, 찜찜함이 오래 남는다면 차분히 확인하고 자기만의 입장을 세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들은 말은 과장되거나 축소된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일제 때 면장을 했다더라”, “일본 경찰이었다더라”,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 같은 말만으로 친일 행적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집안에서 쉬쉬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보기에도 애매하지요. 그래서 감정보다 자료를 먼저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름과 시기부터 차분히 확인하는 방법
가장 먼저 할 일은 인물 정보를 정확히 모으는 것입니다. 같은 이름이 많고, 한자 이름이 다르거나 족보 이름과 실제 활동명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음 정보를 적어두면 좋아요.
- 이름과 한자 이름
- 출생연도와 사망연도
- 살았던 지역
- 직업이나 직책
- 활동 시기
- 가족에게 전해 들은 구체적인 이야기
예를 들어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경찰이었다”는 말과 “1930년대 어느 지역에서 고등계 형사로 활동했다”는 말은 무게가 다릅니다. 공무원이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어떤 직책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당시 생계형 하급직이었는지, 독립운동 탄압에 직접 관여했는지, 식민 통치 선전에 적극 참여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확인할 때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국가기록원 자료, 독립운동 관련 공훈록, 지역 향토사 자료, 신문 아카이브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이름이 나온다고 바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예요. 동명이인 가능성, 지역, 직책, 가족관계가 맞는지 여러 단서를 맞춰봐야 합니다.
친일 행적을 볼 때 구분해야 할 지점
솔직히 “친일파”라는 말은 일상에서 굉장히 넓게 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따져보면 범위가 꽤 다릅니다. 누군가는 일본 제국의 침략 전쟁을 공개적으로 찬양했고, 누군가는 독립운동가를 잡는 데 협력했고, 누군가는 식민 통치 기구 안에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식민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낮은 직책을 맡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볼 때는 단순한 직업명보다 행위의 성격을 봐야 합니다. 다음처럼 나눠 보면 감정적으로 휩쓸리는 걸 조금 줄일 수 있어요.
- 식민 통치나 전쟁 동원을 적극 선전했는가
- 독립운동가나 민간인 탄압에 직접 가담했는가
- 그 대가로 재산, 지위, 훈장 같은 이익을 얻었는가
- 해방 이후에도 그 지위나 재산을 이어갔는가
- 가족 안에서 피해자나 주변인의 증언이 남아 있는가
근데 여기서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과거를 너무 쉽게 변명하려고 하면 안 되지만,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가족 전체를 낙인찍는 것도 위험합니다. “우리집안 친일파예요”라는 문장은 강한 말이라서,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추측인지 나눠 적어보는 게 좋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할 때 덜 싸우는 방식
이 주제는 가족 대화에서 정말 자주 터집니다. 특히 어른 세대는 “그때는 다 먹고살기 힘들었다”, “왜 지난 일을 들추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반대로 젊은 세대는 “왜 숨겼냐”, “부끄러운 일을 왜 인정하지 않냐”라고 느낄 수 있고요. 둘 다 감정이 앞서면 대화가 금방 끊깁니다.
처음부터 “친일파 맞죠?”라고 묻기보다, “이분이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라고 꺼내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비난보다 질문을 먼저 두는 게 좋아요. 어느 지역에 살았는지, 무슨 직책이었는지, 집안에 남은 문서나 사진이 있는지 묻는 식입니다. 족보, 제적등본, 오래된 상장, 임명장, 토지 문서 같은 자료가 단서가 될 때도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방어적으로 반응해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하루 만에 풀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조상의 잘못으로 인해 집안이 이익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대화는 더 무거워집니다. 그럴수록 기록을 남기고, 확인한 내용과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구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들
조상의 친일 행적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고 해서, 지금 당장 거창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 작게 시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가족사 기록을 개인적으로 정리하거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읽거나, 지역의 역사관을 방문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피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태도는 달라집니다.
재산 문제가 얽혀 있다면 더 신중해야 합니다. 특정 토지나 재산이 친일 행위의 대가였는지는 법적, 역사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감정적인 선언보다 자료 확인이 먼저입니다. 국가기록원, 지자체 기록, 등기 자료, 관련 판례 등을 차근차근 확인해야 하고, 필요하면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죄책감을 자기혐오로 끌고 가지 않는 겁니다. 과거의 책임을 현재의 내가 전부 떠안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알고도 혐오와 차별, 역사 왜곡에 기대지 않는 선택은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 지원 단체에 기부하거나, 역사 교육 콘텐츠를 꾸준히 접하거나, 가족 안에서 왜곡된 말을 바로잡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입니다.
“우리집안 친일파예요”라는 말을 처음 떠올렸다면 마음이 꽤 복잡할 겁니다. 부끄러움도 있고, 억울함도 있고, 괜히 나까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보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과거와 다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사는 내가 고를 수 없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음 세대에 어떤 말로 남길지는 지금의 내가 고를 수 있으니까요.






